본문 바로가기
Think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16년만의 리포스팅)

by 스토리대전 2022. 4. 15.

이 포스팅은 안 하려고 했다.
이 주제는 중3때 네이버 블로그에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히 포스팅 했던 내용이다.
그 포스트은 삭제했다. 이유는 내 생각을 훔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보통 훔쳐서 이미지 관리나 상대를 속이는데 쓰는 것 같았다.

그 포스팅은 유독 글만 있는 다른 포스팅보다 조회수가 잘 나왔지만 가짜들이 내 생각을 베껴서 떠들고 다니는 게 싫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20살 또는 21살의 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고등학생 때 날 자주 찾던 사람이었다.(당시 날 찾던 사람들은 통화 한 번에 2시간에서 5시간을 썼다. 매주 2~6번씩 전화를 걸어댔다.) 날 찾던 대부분은 본인들이 힘든 시기 지나가니 날 찾지 않았다. 그래서 전화를 받기 전엔 기뻤다.


난 전화를 받았고 그녀는 내게 맡겨놓은 거라도 내놓으란 듯이 내게 좋아하는 거랑 사랑의 차이를 설명해달라고 요구했었다. 난 당연히 수년 전의 일이라 "기억 안 나." 라고 하니 "아이씨, 그럼 포스팅 주소라도 보내." 라고 짜증을 부렸다.(심지어 난 외출 중이었다.) "지웠는데?", "하아." 한 숨을 쉰 뒤의 말은 기억이 안 난다. 그리고 마치 내가 잘못이라도 한 듯 그녀는 통화를 곧 끊었다. 그 때 그 사람에게 '뭐지 씨발?' 의 느낌을 받았다.

위의 글에서도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를 찾을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찾았다면 이 글은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다. (바로 설명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또 가짜들이 쉽게 내 생각만 훔칠테니.)

사랑의 개념에는 아가페, 플라토닉, 에로스라는 개념이 있다는 걸 들었을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랑의 개념에서 에로스만을 취한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당신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실제로 에로스만을 추구하기에 벌어지는 대화를 단 2줄로 만들어 보자면.

여 : "나 이러려고(성행위) 만나?"
남 : "그게 사랑인데."

일상에서 말하는 이성간의 사랑은 실제 에로스만 들어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대화가 낯설지 않은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모든 형태의 사랑이 최상위 개념이라면 순서대로 아가페 > 플라토닉 > 에로스 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가페를 실천하는 사람은 플라토닉과 에로스는 쉽게 할 수 있다. 플라토닉한 사랑을 하는 경우도 에로스는 언제든지 취할 수 있다. 하지만 에로스만 취하는 사람은 아가페와 플라토닉을 이해조차 못 한다. 심지어 거짓이나 가짜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에로스는 사랑이라는 개념보다 정욕에 가까운 거 같다. 에로스만 들어있는 사랑을 사랑이라고 한다면 제자들과 잠자리에 들고 채벌을 명목으로 화장실에 가둔 뒤 성추행하는 선생들의 행태도 사랑이라 말 할 수 있다. 물론 소아성애자들의 범죄도.

앞에서는 강제성 또는 협박성이 있기에 범죄다. 가볍게 다루어지는 사랑에서는 강제성은 없어 범죄는 아니지만 그 본질은 같다. 남자가 여성의 마음을 사서(대부분 물질이나 시간으로) 여성이 마음을 열면 잠자리를 갖는. 사실 에로스만 들어있는 사랑은 '창녀의 사랑'과 다를 게 없다.(내가 사람들이 꺼리는 단어를 쓰는 이유는 가짜들은 혐오스러운 단어가 있으면 도둑질을 꺼리기 때문) 선 보거나 결정사에 들어가는 사람, 상대방 조건 따져가며 연애하는 사람, 매매혼 하는 사람. 근본적 차이는 단 1g도 없다. (내가 원하는 걸 상대에게 받고, 상대가 원하는 걸 내어주는 거래의 형태.) 이런 생각을 갖고 사니 내 주변에 이런 부류가 남아나질 않는다. 고맙게도 날 혐오해 준다. 아주 좋다.

좋아하는 마음과 사랑을 헷갈려하는 이유를 난 알 것 같다. 그들은 좋아하는 것은 있어도 사랑해본 적은 없는 것이다. 좋아하는 건 어릴적부터 많을 수 있다. '엄마를 좋아한다. 사탕을 좋아한다. 친구를 좋아한다. 게임을 좋아한다. 돈을 좋아한다.' 너무 쉽지 않은가? 내가 원하는 건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자주, 강렬히 원할수록 좋아하는 마음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은 그게 아니다. 위에서 든 5가지 예시 중에서 사랑할 수 있는 건 '엄마'와 '친구'뿐이다. 당신은 돈을 사랑할 수도 게임을 사랑할 수도 없다. 내 가치관 안에선 생명이 없는 건 사랑할 수 있는 게 아니다.(중3 때도 이 가치관 그대로였다.) 그저 좋아하는 마음이 큰 것이지. 나에게 사랑이란 건 상대방이 기뻐하고, 웃고, 즐겁고, 행복하고, 존중을 느끼고, 아껴짐을 느끼고, 따뜻함을 느끼고, 기댈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게 사랑이다. 그래서 무생물은 사랑할 수 없다. 상대가 행복하길 원해서 움직이는 게 사랑이다.

"난 돈을 사랑해."
"게임 사랑하지."
"내 가게를 사랑해."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스쳐 가는 친구가 될 순 있어도 사랑할 대상에선 거른다. 이유는 자신의 강렬한 욕망을 채워주는 도구를 사랑이라고 믿기 때문. 단 한마디로 자기중심적인 사랑을 하는 사람이란 게 드러난다. 그런 부류들이 집착과 사랑의 차이를 구분 못 한다. 집착은 병적으로 좋아하는 것이지 사랑이 아니다. 상대를 지치게만 하니까.

비슷하게 비교하는 사랑(누구는 선물로 뭐 받았대, 해외로 놀러갔대, 나 다른 남자가 고백했는데 너 어쩔거야?)을 한다거나 집착을 한다거나(네 시간은 나한테 써야지, 나한테 뭘 하든 전부 보고해.) 질투심을 유발하는 사랑과 다를 게 없다.(질투심을 유발해 내가 원하는 상대의 마음을 괴롭게 하여 나에게 집중하게 만드는. 상대는 지치게 만들고 자신은 사랑받는 느낌과 상대를 쉽게 소유할 수 있는.)

위에선 가짜들이 내 생각을 훔칠까봐 이 포스팅을 안 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짜들에게 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이 글을 읽고 생각해보길 바란다. 당신들이 그 가짜들과 다른 게 있었는지. 사랑의 피해자라고만 말하는 사람들이 내 기준에선 가해자이기도 하다. 에로스와 인간 본성을 욕하는 게 아니다. 욕정과 물질에만 집중하는 이기심을 사랑이라고 나불대는 사람들을 욕하는 거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