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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일기(일부비공개)

23. 우울증 일기 - 속초로 놀러 갔다.

by 스토리대전 2021. 5. 5.

강원도 인제에서 군생활을 했기에 강원도는 싫었다.

같이 간 친구 P도 오줌도 안 싼다고 했지만 우린 결국 강원도 속초로 놀러 갔다.

 

전말은 이랬다. 밤에 일하는 친구 H가 일하는 곳에서 스트레스 때문인지 퇴근 직전에 술을 마시자고 전화를 했지만 난 자고 있었다.

내심 미안함에 내일 퇴근 전이 아니라 아침에 미리 연락을 달라고 했다.

연락이 없기에 난 주식을 살펴보다 잤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니 또 퇴근 전 30분에 연락을 했던 것이다.

 

또다시 다음 날.

난 3번이나 물었다. "술 안 마실 거야?", "안 마셔." H의 대답은 확고했다. 그럼 알겠다고 하고 잤다.

잤는데 5시간 전에 안 마신다던 H가 자고 있던 날 전화로 깨우더니 노래방으로 불렀다.

다른 사람하고 마셨는데 아쉬워서 2차를 하고 싶다고 부른 것이다.

잠결이라 꽤 짜증도 나고 귀찮기도 했지만 일단 나가서 지하철을 탔다.

 

자다 일어나 노래방에서 몇 곡 부르고 바로 포장마차에 들어갔다.

직장에서의 일은 별로 얘기하지 않고 다른 얘기들을 했다.

그러다 갑자기 해 뜨는 게 보고 싶다며 강원도로 놀러 가자고 하는 H.

싫었다. 강원도는 정말 싫었다. 군대에서의 부조리와 좋지 않은 기억뿐 아니라 강원도민들의 군인 차별도 있었기에 강원도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지 않다.

 

하지만 끈질기게 가자고 하는 H의 말에 P에게도 물어보라고 했다.

P는 나보다 강원도를 더 싫어하는 것 같았다.

둘 다 102 보충대 출신으로 강원도에서 만기 전역했지만 P는 GOP경험까지 있었다.

H와 P는 중간에 내가 이어준 인연이기에 둘의 사이는 편하지만은 않다.

그래서 H는 나에게 자꾸 P에게 권유를 떠넘겼지만 내가 편하기에 오히려 P는 여행을 간단히 거절하려 했다.

그런 낌새를 눈치챈 나는 H에게 "네가 직접 말해."라고 했다.

 

처음엔 H가 거부했지만 "내가 말하면 무조건 안 가."라고 말하니 그제야 카톡을 직접 보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H에게 직접 말하게 하니 P도 가는데 동의했다.

(여행길에서 돌아올 때 P도 내가 말했으면 안 갔을 텐데 H가 직접 말해서 왔다고 말했었다.)

 

출발은 4월 16일 오후 6시.

친구 P는 5시 30분 퇴근, 여행을 주도한 친구 H는 오후 12시 퇴근이었다.

퇴근 후 잠깐 잠을 자고 5시에 나를 태우고 P의 직장 앞으로 갔다.

 

우린 과격한 운전을 즐기는 H의 렌터카에 타고 괴로운 기억뿐인 강원도를 향했다.

배가고파 휴게소에서 식사와 간신을 즐겼다. 최근 휴게소는 많이 다녔지만 만쥬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보통 사 먹는 간식이 아닌데 P가 먹고 싶다고해서 샀다.

 

2시간 이상 시간을 소요한 뒤 도착한 속초. 

우린 숙소에 짐을 놓고 광어회 9만원어치와 소주를 사고 돌아왔다.

 

한참을 먹고 마시고 떠들었다.

초라해보이지만 처음엔 가득가득했던 광어회
그것도 모자라 끓은 매운탕

먹다가 술이 떨어져 택시를 타고 먼 편의점 까지 왔다갔다했다.

그것도 2번이나. 근처 편의점은 모두 문을 닫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우린 너무 배가불러 술 마시다 도중에 나가 노래방을 갈까 폭죽놀이를 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폭죽놀이를 했다. 정말 오랜만의 폭죽놀이여서 그런지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폭죽이라고 해봐야 여의도에서 터뜨려주는 거나 감상했지 일행과 직접 터뜨린 적은 초등학교 저학년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사실 4시쯤 우린 아쉬운 마음에 노래방에 전화해보았지만 곧 문을 닫는다는 대답을 듣고도 택시를 잡아 나갔다.

'코로나라 영업하면서도 닫는다고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이었다. (속초는 서울과 단계수가 달랐다.)

하지만 노래방 주인분 말씀대로 노래방들은 모두 닫혀있었고 우린 또 술을 사 갔다.

 

그 뒤로 H는 잠들고 P와 자기 전 대화를 하는데 P가 팩트폭행을 했다.

무슨 일을 하기 전에 철저히 알아보는 것도 좋고 아는것도 많아서 좋은데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주식하는 걸 좋게 생각한다고. 새로운 것 중에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니까.

 

P는 내 기분이 상할 수 있겠지만 그게 본인이 느끼는 팩트란다.

난 인정했다. 네가 날 그렇게 느낀다는데 그건 사실이고 아니고를 따질필요 없다. 그건 그대로 사실이라고.

 

하지만 좀 충격이었다. 난 내가 부자가 되지 못해도 부자처럼 행동하고 싶어했다. 그들의 핵심요소 중 '실행력'은 절대 빠지지않는 요소였는데 그 요소가 내게 전혀없어 보인다는 게 충격이면서도 인정할 수 있었다.

 

'신중하게 고민한다, 양심에 찔려 하기 싫다.' 라는 말들로 게으름을 합리화하고 있던 것이었을까?

 

이젠 P도 잔다고 한다. 난 어차피 여행오면 거의 못 자니 혼자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초행길에 산책을나갔다. 길이 좁은 골목길로 향했다. 아무생각 없이 걷고 싶었다.

그러다 결국 큰길로 나오게 되었는데 고양이를 만나 주변에 굴러다니던 새우튀김을 주었다.

한 번은 도망가더니 두 번째엔 내가 내려놓은 새우튀김에 다가갔다.

난 그것만 확인하고 다시 걸었다.

 

걸으면서 해가 뜨는 바다.

어부들의 대화.

상인들의 수산물 거래.

바다위의 쓰레기.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행인.

 

잡다한 것들을 구경하며 걸었다.

일몰같은 일출

2시간을 넘게 걷다 돌아갔다.

술 마시면서도 1시간 이상을 걸었으니 3시간을 넘게 걸은 날이다.

 

숙소로 돌아와 환기를 시켰다.

2인용 침대가 2개였지만 친구들이 깰 수도 있다. 또 난 옆에 누가 있으면 못 자기에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

누운 이유도 환기하는 바람이 너무추워 이불을 덮었던 것이다.

 

그러다 잠에 들었는데 1시간 뒤 곧 나가야 할 시간이라 일어났다.

우린 칫솔모가 빠지는 싸구려 칫솔로 양치를 하고 아침을 먹으러 나섰다.

 

여러 선택지가 있었고 난 속이 안 좋았기에 물회는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심지어 자기 전 까지 회를 질리도록 먹었는데 또 회라니 먹기도 전에 물리는 느낌.

그래도 친구들이 먹어보러 가자는데 찬물을 뿌리긴 싫었다.

놀러온 김에 맛집으로 가는 게 좋을 거 같아 나도 동의했다. 

 

청초수물회

우린 3인분과 추가반찬하나에 5만원이 넘는 식사를 하고 속초를 떠났다.

주문과정에서 주문받으신 분의 실수로 밥이 좀 늦게나왔지만 확실히 사과를 하시는 모습이 좋았다.

내 전 직장 상사들과는 너무나 상반된 모습이었기에.

 

사실 회를 먹으면서 이상한 얘기를 했다.

이상한 얘기라면 대충 '내가 자폐를 겪었다면 아까 봤던 담장같은 곳에서 이 나이까지 흙장난을 하고 있었을 것 같아. 그냥 그런 상상이 저절로 들어.' 이런얘기들이다.

 

보통사람은 하지 않을 것 같은 이상한 상상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건 한적한 곳이나 가기싫은 강원도(군생활과 군인 등골 빼먹는 상인들이 싫었기에) 또는 경기도(가장 짧게 살면서 겪은 나쁜일의 대다수가 아직도 경기도에서의 기억. 물론 서울에서도 뭣같은 기억들이 있다.) 

 

이런 얘기라도 돈 내고(친구 한 명이 돈을 많이썼다.)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지금 난 많이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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