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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일기(일부비공개)

26. 우울증 일기 - 스트레스 해소 방법

by 스토리대전 2022. 2. 23.

노래를 듣다가 쓰고 싶은 구절이 생겼다.
작문을 하다가 새로운 글이 쓰고 싶어졌다.

내가 가장 취약한 '사랑'을 주제로.
사랑이라면 분명 행복하다는 감상을 줘야할텐데 내 글에는 '슬픔'과 '애틋함' 비스름한 것들로 채워지고 있다.

말에는 생각이 묻어나고 글에는 경험이 묻어나는 것 같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농담에도 일말의 진심이 담겨있고 오글거리는 글귀도 쓸 때 만큼은 진심이다.

풋풋한 감정을 드러내는 글을 쓰다가 문득 10살 때 즈음의 기억이 떠올랐다.
체육시간에 줄넘기를 허리에 묶는 모습을 끝까지 보던, 살색 색연필을 빌려 달라던, 다른 남자애가 내게 볼뽀뽀로 장난 치는 걸 구경하던, 하굣길 경사진 집 앞 언덕까지 따라와 필통을 빌려달라던 여자아이.
당시의 난 기대 이상의 관심을 받는 게 두려웠던 탓일까?
"헤에 개미허리!" 라던 소녀에게 "개미허리 아냐." 라고 했다.
"살색 색연필 좀." "왜 나한테만 빌려달래 다른 애한테 빌려." "다른 애들 살색 없어." "살색이란 말은 틀린거야." 라며 핀잔을 주었다.
남자아이에게 뽀뽀를 당한 날 보고 "굳었어." 라고 말했을 때 장난 친 녀석을 쫓으며 못 들은 척 했다.
"필통 좀 빌려줘" "학교 끝났는데 왜?" "가지고 놀고 내일 돌려줄게." "싫어." 하고 뒤돌아 갔다.

그 여자 아이가 내 근처에 있던 기억은 여기가 마지막이다.
사실 거의 지워졌었던 기억이다. 그 기억은 20살이 훨씬 넘었던 나이에 떠올랐다.
중학생 때부터 만난 친구가 초등학생 때부터 만났으면 좋았을 거 같다는 아쉬움을 내비칠 때 그 기억이 떠올랐다.
그 뒤로 소멸해가던 기억은 선명해졌고 다른 기억들까지 더욱 또렸해졌다.

당시 그 여자아이를 좋아하던 남자애를 알고 있었다. 나와는 특별히 친해질 계기가 없었지만 악의도 없었다.
단순히 서로에게 별 관심 없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인 거 같다. 분명 그랬는데 6학년 때는 이유도 없이 불고기 식당으로 초대해주었다. 그 식당은 그 남자애의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식당이었다. 그 때도 난 "안 가, 돈 없어." 라고 했지만 녀석은 끝까지 날 데려가주었다.

중학생 때도 같은 학교로 가게 되어 간혹 만나게 되었는데 간혹 만나게 된 사이라기엔 내게 너무 친근하게 굴었다.
집 앞까지 따라와 놀자고 했었고 하루는 반나절 동안 그 녀석의 집에서 킹오브 파이터라는 게임을 같이 했다.
분명 녀석은 내가 잘 다루지 못하는 치즈루라는 캐릭터를 했던 거 같다.

사실 중학생 때 다른 녀석들에게 허세가 심했던 녀석들이 내게는 살갑게 다가왔다. 그럴 때 그 친구는 갑자기 내게 살가운 척, 친한 척 하는 친구에게 뭐라고 했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이것도 성인이 되서 당시부터 친하게 지내던 다른 친구에게 이 이야길 해 주었더니 "너한테만 안 그런 거야. 좀 그런게 있잖아, 건들면 안 될 거 같은." 이라는 말로 알게된 것이다. 그리고 순하기만 한 친구들을 대하는 태도도 알려주었다.

날 불고기 집으로 초대해 주었던 녀석 얘기를 이어 하자면 20살 초반의 나이에 다시 나와 다른 친구들을 부모님 가게로 초대해 주었다. 너무 갑작스런 초대였지만 꿍꿍이는 커녕 부담도 주지 않았다. 그런 녀석에게 난 그 때에도 "얼마야?" 라고 한심한 질문을 했던 거 같다. 즐거운 시간이었던 거 같다.
행복감이 올라온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무던하게 지나가는 식사 시간이 즐겁지 않다면 세상에 즐거운 일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물론 초등학생 때 처럼 돈을 안 내고 가긴 싫었다. 당연한 계산을 한 것 뿐인데도 녀석과 부모님은 환하게 웃어주셨다. 그 때 이후로 별 연락없이 지내다 이사간다는 소문만 들은 채 연락이 끊겼다.

30살도 더 넘은 나이에 그 때의 소녀와 소년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소녀가 별 볼일 없는 내게 왜 호기심을 품었는지 소년이 언제부터 날 친하다고 느끼게 되었는지.
마음이 건강한 너희는 분명 잘 지내고 있을 거다.

생각 없이 행동하고 말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며 타인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게 일상인 나지만 두 녀석은 분명 나보다 성숙한 사람이라는 걸 당시에도 어렴풋이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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