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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귀멸의 칼날 1화 글로 써보았다.

by 스토리대전 2022. 3. 15.

새하얀 눈밭.

 

보슬보슬 내리는 눈과 소리마저 차가운 바람에 점점 거칠어지는 숨소리.

고개를 드니 앙상한 나무들만 가득한 산 속.

 

?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탄지로는 자신의 이마에 있는 흉터와 같은 곳에 피를 흘리는 여동생을 업고 그 눈밭을 걸었다.

 

네즈코 죽지 마, 죽지 마.

반드시 구해줄 테니까.

죽게 놔둘 거 같아?

오빠가 반드시 살려줄 테니까.

탄지로는 끝이 어딘지도 모를 산속을 걸으며 다짐했다.

 

 

*

 

탄지로는 어깨에 숯을 한 가득 메고 집 앞에 섰다.

 

탄지로, 얼굴이 새까맣잖니. 이리오렴.”

 

그를 부른 건 그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자신의 옷에다 두 손을 닦고는 하얀 수건으로 탄지로의 얼굴을 닦아주며 말했다.

 

 

눈이 내려서 위험하니까 굳이 갈 필요는 없단다.”

설날이 되면 모두 배불리 먹여주고 싶으니까 조금이라도 숯을 팔고 올게요.”

고맙구나.”

 

그녀는 무릎까지 꿇은 채 탄지로의 얼굴을 말끔하게 닦아주었다.

 

 

형아. 오늘도 마을 가는 거야?”

나도 갈래.”

 

탄지로의 남동생과 여동생이었다.

동생들 뒤로 슬쩍 보이는 또 다른 남동생도 마을에 함께 내려가고 싶었는지 나도 마을에 가겠다고 조르는 여동생의 말을 듣고는 움찔거렸다.

 

안 돼. 탄지로처럼 빨리 못 걷잖니.”

 

탄지로의 어머니가 일어나며 동생들에게 말했다.

이런 눈밭에 탄지로를 보내는 것도 걱정인데 더욱 어린것들이 따라가게 둘 순 없었다.

 

엄마~.”

안 돼.”

 

그래서 어린것의 투정에도 단호했다.

 

오늘은 짐차도 끌고 갈 수 없으니까. 태워달라고 해서 쉴 수도 없단다.”

형아!”

 

단호한 어머니 대신 남동생이 찾은 건 형이었다. 그는 탄지로에게 달려가 안겼다.

 

따라가고 싶어. 잘 도와줄게.”

 

하나코도 거들었다.

 

고마워 하나코.”

 

탄지로는 동생들의 마음이 고마웠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얼마나 돕겠냐만 동생들의 예쁜 마음이 고마웠다.

탄지로는 하나코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래도 오늘은 집보고 있자.”

 

탄지로가 말을 이어하자 곧 기뻐할 것 같던 하나코는 금세 울상이 되었다.

 

시게루도, 대신 맛있는 거 잔뜩 사올게.”

정말?”

 

탄지로가 남동생 시게루의 눈높이에 맞춰 그의 눈을 보며 달랬다.

 

.”

 

확답을 들은 시게루는 배시시 웃었다.

 

하나코도 돌아오면 책 읽어줄게.”

!”

 

책을 좋아하는 하나코는 오빠가 책 읽어주는 게 좋았다.

맛있는 걸 사온다고 했을 때도 웃지 않더니 이제야 웃는다.

 

착하 애다.”

고맙구나, 탄지로.”

 

이번에도 탄지로의 어머니는 그에게 고맙다고 했다.

형으로서, 오빠로서 아이들을 잘 달래는 모습은 엄마의 수고를 덜어주는 일이었기에.

 

그럼, 다녀올게요.”

 

그는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고는 자신과 꼭 닮은 도끼를 한 쪽 어깨에 메고 있는 동생에게 말을 걸었다.

 

타케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되니까 조금 장작을 패줄래?”

그야 하겠지만 말야같이 하는 줄 알았는데.”

 

고개를 돌리며 입이 삐쭉 튀어나온 타케오.

그런 모습도 나와 같이 있어서 나오는 걸 알고 있기에 탄지로에겐 귀엽게만 보였다.

 

착하지, 착해.”

뭐야, 갑자기.”

 

타케오는 탄지로에게 아직 어린 동생들과 같은 취급을 받는 게 쑥스러웠다.

 

타케 형, 쑥스러워 한 대요.”

 

그런 타케오를 키가 가장 작은 시게루가 놀렸다.

 

시끄러워!”

착하지, 착해.”

그만하라니까!”

 

타케오의 짜증에도 어쩐지 가족들은 모두 웃었다.

 

빨리 돌아와야 해.”

 

가장 어린 시게루였다.

다른 가족들은 한 쪽 손을 높이 흔들며 탄지로를 배웅했다.

 

조심해서 다녀.”

 

여동생 하나코도 한 마디 붙었다.

 

오빠.”

 

집에서 조금 내려오니 탄지로만큼 키가 큰 여동생 네즈코가 불렀다.

 

네즈코.”

로쿠타를 어르면서 재우고 있었어. 소란 피우곤 하니까.”

 

 

아직 어린 로쿠타를 달래고 어르는 건 항상 네즈코가 맡아주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선 쓸쓸해 하는 거겠지?”

 

네즈코가 어깨뒤로 로쿠타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탄지로는 그런 동생들이 귀엽기만 했다. 손으로 로쿠타의 머리를 만지니 얼굴이 다 가려질 거 같았다.

 

다들 오빠한테 달라붙어 살게 되어버렸네.”

 

네즈코의 말에 조금은 씁쓸해 보이는 미소를 짓는 탄지로.

 

잘 다녀와.”

 

생활은 편하지 않지만 행복하구나.

그런 동생들을 보면 항상 드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하늘처럼 변해가니까. 변해가고 움직여가.

계속 화창하기만 하지는 않을뿐더러 평생 눈이 내리기만 하지도 않아.

그리고 행복이 무너져 내릴 때에는 언제나……. 피의 냄새가 온다.

 

탄지로는 알고 있던 걸까?

 

*

 

마을에 내려오니 가게 앞을 쓸고 있는 아주머니가 반겨주셨다.

 

어머, 탄지로잖니. 이런 날에 산을 내려온 거야? 부지런히 일 하는구나. 감기 걸리겠다.”

이 정도는 가뿐하죠. 숯은 좀 어때요? 부족하진 않아요?”

어이, 탄지로.”

 

아주머니에게 대답을 듣기 전, 옆 가게 아저씨가 불렀다.

 

 

숯 좀 팔아줘. 요전엔 장지문 바꿔달아 줘서 고마웠다.”

우리 집도 숯 좀 주렴.”

 

또 다른 가게의 아주머니도 대화에 참여했다.

내려오자마자 숯을 팔 수 있다니. 동생 시게루에게 했던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거 같아 미소가 절로 나왔다.

 

으윽! 탄지로, 마침 잘됐다.”

 

뒤에서 한 아주머니에게 잡혀있던 또래 남자아이는 코피를 흘리며 탄지로에게 다가갔다.

 

접시 깬 범인 취급 받고 있다고, ! 살려주라. 맡아줘.”

 

그는 형태도 남지 않은 붉은 접시를 보라색 보자기에 받쳐 탄지로에게 내밀었다.

탄지로는 접시 앞에서 킁킁대고는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고양이 냄새가 나는데?”

거 봐!”

 

탄지로의 말에 남자아인 목소릴 높였다.

 

어머, 고양이였니?”

내가 아니라고 했잖아.”

남자아인 많이 억울했는지 눈물까지 맺혀있었다.

 

, 탄지로. 잠깐 짐 옮기는 거 도와주면 안 되냐?”

 

이번엔 짐을 잔뜩 내려놓은 아저씨였다.

그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 전부 탄지로에게 부탁하는 게 익숙해보였다.

 

*

 

많이 늦었다.

어둑어둑한 산길이 늦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그래도 전부 팔려서 다행이야.

 

이놈 탄지로!”

 

탄지로를 부른 건 산 밑 작은 나무집에서 사는 아저씨였다.

 

, 산으로 돌아갈 셈이냐? 위험하니까 관둬라.”

 

그는 걱정 가득한 목소리였지만 탄지로는 집에서 쉬고 싶었다. 기다리는 동생들도 있고.

 

전 냄새 잘 맡으니까 괜찮아요.”

우리 집에서 재워주마. , 돌아와.”

그래도.”

잔말 말고 들어와.”

 

워낙 단호한 아저씨 때문에 탄지로는 그의 말을 따랐다.

 

오니가 나올 거다.”

 

굳어있는 그의 표정엔 장난기는 전혀 없었다.

그가 차려준 간소한 식사.

 

잘 먹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탄지로의 말이었다.

 

있잖아, 사부로 아저씨 오니란 건 어떤 느낌이야?”

예로부터 사람 잡아먹는 오니는 해가 지면 어슬렁대기 시작한댔지.”

 

사부로는 이부자리를 꺼내며 탄지로의 질문에 답해주었다.

 

 

그러니 밤에 쏘다니면 못 쓴다. 다 먹었으면 자라. 내일 일찍 일어나 돌아가면 된다.”

 

오니에 관해 알고 있는 사부로의 말을 듣는 편이 좋겠지.

탄지로는 그가 만들어준 잠자리에 누워 또 물었다.

 

오니는 집 안에는 안 들어오는 거야?”

아니, 들어오지.”

 

사부로는 손잡이가 긴 파이프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럼, 다들 오니에게 잡아먹힐 거 아냐?”

그러니 오니 사냥꾼님들께서 오니를 베어주시는 거 아니겠냐. 예로부터.”

 

그는 담뱃재를 털고 일어났다.

 

불 끌란다. 이제 자라.”

사부로 아저씨 가족들을 여의고 혼자 살고 계시니까 쓸쓸한 거겠지.

다음엔 남동생들을 데리고 놀러올 테니까, 무서워하지 않아도.

오니같은 건 없어. 괜찮아.

 

탄지로는 사부로가 외로워서 오니 얘기로 자신을 붙잡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할머니께서도 돌아가시기 전에 비슷한 말씀을 하셨지?

 

*

 

조심히 돌아가라.”

.”

 

이른 아침에도 사부로는 탄지로를 배웅했다.

 

행복이 무너져 내릴 때에는 언제나…….

 

탄지로는 알고 있던 걸까? 피의 냄새를.

 

피 냄새.”

 

불길한 예감은 왜 항상 맞는 걸까?

멀리서도 피 냄새를 맡고 달려온 탄지로. 그의 뺨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고 그의 눈엔 하얀 눈밭 위에서 피범벅이 된 네즈코와 로쿠타가 있었다.

 

포효.

한 눈에 포착된 절망 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

탄지로는 동생들에게 달려갔다.

 

네즈코! 왜 그래? 왜 그러는데? 무슨 일이 있었어?”

 

 

그녀는 대답이 없다.

부셔진 문 안쪽을 바라보자 그의 어머니와 다른 동생들까지 모두 피범벅. 마지막까지 가족들을 지키려 했는지 타케오는 눈도 감지 못했다.

동생들 이름을 하나씩 불러도 누구 하나 대답이 없다.

 

뛰었다. 탄지로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네즈코를 업고 뛰었다.

의사한테 가면 살 방도가 있을지도 모른다. 탄지로의 희망은 그것뿐이었다.

 

왜 이렇게 된 거지? 동면에 들었던 곰이 깨기라도 한 건가?’

 

아직 오니의 존재를 믿지 않는 탄지로의 짐작.

 

숨쉬기 어려워. 얼어붙은 공기가 폐에 들어와.’

 

앞으로 나아가.

좀 더 빨리 다리를 움직여.

아직 마을까지 거리가 멀단 말야. 서둘러!

 

탄지로는 스스로에게 엄살피지 마!’라며 채찍질했다.

 

죽게 놔두지 않아, 꼭 구해줄게. 오빠가 구해줄게.’

 

그런 탄지로의 마음이 업혀있던 네즈코에게도 전해졌는지 그녀는 손가락을 조금 움직였다.

이내 기괴한 소리를 내며 발버둥치는 네즈코.

그 반동으로 탄지로는 절벽에서 떨어졌다.

 

 

살았다.’

 

절벽은 낮았고 밑엔 눈이 폭식하게 쌓여있어 문제는 없었다.

당장 일어나 네즈코를 찾았다.

하얀 눈과 잿빛의 앙상한 나무들 사이에서 피범벅이 된 여동생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네즈코 괜찮아? 걷지 않아도 돼. 내가 마을까지 업어줄 거니까.”

 

당장 네즈코에게 달려간 탄지로.

허나 네즈코는 화가 많이 났는지 탄지로를 물려고 했다. 짐승처럼.

 

 

, 이건오니다!’

 

여동생의 힘에 압도된 탄지로는 이전에 오니를 본 적은 없었다.

흉폭 하게 변한 네즈코의 얼굴이 오니라는 존재를 믿게 했다.

오니의 이빨을 도끼 손잡이 하나로 막아내고 있었다.

 

사부로 아저씨가 말씀하셨던 게 이거구나.’

 

네즈코가 사람 잡아먹는 오니였나?

아냐! 네즈코는 인간이야. 태어났을 때부터 봐왔는걸.

하지만, 냄새가 평소의 네즈코랑은 달라졌어…….

하지만 가족을 해친 건 네즈코가 아냐. 로쿠타를 감싸고 있었고 입, 손 어디에도 피는 묻어있지 않았어.

 

간신히 버티면서도 여동생의 무죄를 추리하던 탄지로는 이제 여유가 없어졌다.

겨우 버티고 있었는데 네즈코의 몸이 커지면서 힘도 강해졌다.

그럼에도 그는 아직 가족들을 생각했다.

 

내가 다른 곳에서 편하게 자고 있을 때 오니에게많이 아팠지? 괴로웠지? 구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이미 숨을 거둔 어머니와 동생들은 방도가 없다만 네즈코만큼은 어떻게든 해주고 싶다.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빠진 탄지로의 마음이었다.

 

네즈코 힘내. 네즈코 견뎌줘! 힘내는 거야. 오니같은 게 되면 안 돼.”

 

힘으로는 그녀를 밀어내는 것조차 할 수 없다. 그녀에게 부탁하는 게, 눈물을 글썽이며 부탁하는 게 탄지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정신 차려! 힘내, 힘내!”

 

그의 목소리가 들렸을까?

이 추운 산속에서 뜨거운 것이 탄지로의 얼굴에 떨어졌다.

네즈코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누군가 자길 죽이러 오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날쌔고 시퍼런 칼날이 남매를 갈라놓았다.

탄지로는 네즈코를 품에 감췄다.

덕분에 눈치는 챘지만 피하진 못했던 네즈코 대신 탄지로의 머리칼만 잘렸다.

혜성처럼 나타난 남자의 칼은 태풍같은 바람을 일으켰다.

한참이나 네즈코를 안고 구른 탄지로는 나무에 걸려서야 멈췄다.

네즈코는 정신을 잃고 제 몸으로 돌아왔다.

 

뭐야?’

 

탄지로의 눈엔 칼을 들고 있는 남자가 들어왔다. 그의 눈은 그가 들고 있는 칼날만큼이나 차가웠다.

 

누구야?’

 

탄지로는 그가 들고 있는 칼을 보았다.

 

 

왜 감쌌지?”

여동생이야. 내 여동생이란 말이야.”

 

남자는 탄지로 쪽을 노려보았다.

네즈코는 정신이 돌아왔는지 다시 오니처럼 그르렁거렸다.

 

그게 여동생이냐?”

 

탄지로는 남자의 물음에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었다.

그런 탄지로에게 남자는 날아왔다.

네즈코를 안았지만 남자의 움직임을 피할 순 없었는지 네즈코는 이미 남자에게 잡혀있었다.

사냥꾼에게 잡힌 짐승처럼.

 

네즈코!”

움직이지 마라. 내 사명은 오니를 베는 것이다. 물론 네 여동생의 목도 벤다.”

 

남자는 한 손으로 오니가 된 네즈코를 제압하고 있었다.

 

기다려줘! 네즈코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어. 우리 집에는 또 하나, 맡아본 적 없는 다른 누군가의 냄새가 났어. 모두를 죽인건 아마 그놈일 거야!”

 

남자는 탄지로의 확신 없는 말을 계속 들어주었다.

 

어쩌다 지금 그렇게 된 건지는 모르지만그래도!”

간단한 얘기다. 상처에 오니 피를 뒤집어써서 오니가 되었다. 사람 잡아먹는 오니는 그렇게 늘어나지.”

네즈코는 사람을 잡아먹지 않아!”

잘도 그런 말을. 방금 전에 잡아먹힐 뻔 해놓고.”

아냐! 날 분명 알아봤을 거야. 내가 아무도 공격 못하게 막을게. 꼭 네즈코를 인간으로 돌려놓을게. 반드시 낫게 만들게!”

낫지 않아. 오니가 된 이상 인간으로 돌아오는 일은 없다.”

찾을게, 반드시 방법을 찾아낼 테니까! 죽이지 말아줘. 우리가족을 죽인 녀석도 찾아낼 테니까. 내가 전부 해결할 테니까. 그러니까그러니까 죽이지 말아줘!”

 

이제 더 이상 나한테서 소중한 걸 빼앗아 가는 건하지 말아 줘.

탄지로는 두 손을 모아 엎드리고 머리까지 조아렸다.

 

하지 말아주세요. 부디, 여동생을 죽이지 말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부탁드립니다…….”

 

부탁.

약한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이었다. 듣고 있던 남자는 그런 탄지로가 짜증났다.

 

생사의 주도권을 타인에게 쥐게 하지 마! 꼴사납게 절하는 짓은 그만둬. 그딴 게 통했으면 네 가족은 살해당하지도 않았을 거다!”

 

그의 말에 탄지로는 허리를 폈다.

 

주도권도 잡지 못하는 약자가 여동생을 낫게 해? 원수를 찾아내? 가소로워! 약자에겐 어떤 권리도 선택지도 없다. 철저하게 힘으로 강자에게 짓밟혀 굴복당할 뿐!”

 

남자가 말하는 건 정론.

모든 생명들이 받아들이는 순리였다.

 

오니들이라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오니들이 네 소망을 존중해줄 거라고 생각 마. 당연히 나도 네놈을 존중하지 않는다. 그게 현실이다! 왜 여동생을 감쌌던 거냐? 겨우 그 정도로 지킬 수 있겠냐! 왜 도끼를 빼지 않고 등을 보였지? 그 판단으로 여동생을 빼앗겼지. 네놈까지 여동생이랑 같이 뚫어버릴 수도 있었다!”

 

미웠다. 앞의 남자가.

강자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은 더욱 미웠다.

그래서 탄지로는 울었다.

 

울지 마. 절망하면 안 돼.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지. 네가 좌절한 건 알고 있다. 가족은 죽고 여동생은 오니가 되었으니. 괴롭겠지. 비명을 지르고 싶겠지. 안다내가 한나절만 일찍 도착했더라면 네 가족들도 죽지 않았을지 모르지. 그러나 시간을 되돌릴 순 없지.’

 

남자는 그런 탄지로를 보면서도 탄지로가 포기하지 않기를 바랐다.

 

화내라. 용서 못한다는 강하고 순수한 분노는 팔다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지. 나약한 각오로는 여동생을 지키는 것도 낫게 하는 것도 가족의 원수를 갚는 것도 할 수 없다!’

 

 

남자는 네즈코를 찔렀다. 탄지로가 화내길 바라며.

 

그만둬!”

 

탄지로는 남자에게 돌멩이를 던졌지만 남자는 간단히 튕겨냈다.

탄지로는 도끼를 줍기 위해 뛰었는데 운이 좋게도 눈바람이 불어 남자의 시야에서 일순간 벗어났다.

 

다시 한 번 돌멩이.

남자는 가볍게 피했다.

탄지로는 남자에게 도끼를 들고 뛰어들었다. 그랬는데.

 

감정에 치우친 단순한 공격. 어리석다!’

 

남자는 달려든 탄지로의 등을 칼 손잡이로 간단히 제압했다.

탄지로는 쓰러졌고 전투는 이렇게 끝이 나는 듯 보였다.

 

이상해. 도끼는 어딨지?’

 

눈밭엔 탄지로가 들고 있던 도끼는 보이지 않았다.

스멀스멀 들려오는 날카로운 소리.

남자의 머리위에 도끼가 날아오고 있었다.

예측하지 못한 공격에 놀랐지만 남자는 탄지로의 회심의 일격이었던 도끼에도 맞지 않았다.

 

나무 그늘에 숨기 직전 이쪽으로 돌을 던지는 동시에 위로 도끼를 던졌다?’

 

 

맨손인 것을 들키지 않도록 휘두르려는 자세로 손 언저리를 감추고 달려들었던 탄지로.

남자는 탄지로가 자신에게 이기지 못할 걸 알기에 그런 전술을 펼쳤다는 걸 눈치 챘다.

 

자신이 베인 뒤에 날 베려고 했다. 이 녀석은…….’

 

약하기만 한 탄지로를 다시 보던 남자는 네즈코의 발차기에 날아갔다.

 

이런!’

 

네즈코는 탄지로에게 다가갔고 탄지로는 곧 먹힐 것 같아 보였다. 그런데.

오니가 된 그녀가 쓰러져있는 탄지로 앞을 지켰다.

 

[네즈코는 안 그래. 네즈코는 사람을 잡아먹지 않아!]

 

 

남자는 탄지로가 쓰러지기 전 하던 말이 들리는 듯 했다.

 

예전에 같은 소릴 하다가 오니에게 잡아먹힌 녀석이 있었다. 배고픈 상태인 오니는 부모든 형제든 죽이고 잡아먹는다. 영양가가 높으니까. 지금까지 그런 건 수도 없이 봐왔다.’

 

남자가 놀란 이유였다.

네즈코는 상처를 입었고 오니로 변하기도 했기에 많이 굶주린 상태일 텐데도 탄지로를 먹지 않았다.

 

네즈코가 공격을 퍼부었지만 남자의 생각을 멈출 정도로 위협적이진 않았다.

남자는 이 오니는 다른가? 라는 생각을 하며 네즈코를 상대하고 있었다.

 

이 녀석들은 무언가 다를지도 모르겠어.’

 

그렇게 생각한 남자는 칼을 칼집에 넣었다.

달려드는 네즈코를 보고서도.

네즈코는 남자의 손날 한 방에 기절했다.

 

*

두고 가서 미안하구나, 탄지로. 네즈코를 부탁할게.”

 

탄지로의 어머니였다.

분명놓치기 싫어서 잡았는데 눈을 떠보니 옆에 있는 건 대나무를 자갈처럼 물고 있는 네즈코.

 

일어났나?”

 

기절하기 전에 상대하던 남자였다.

남자는 탄지로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

 

안개산 기슭에 살고 있는 우로코다키 사콘지라는 노인을 찾아가 봐. 토미오카 기유한테 소개받고 왔다고 해라.”

 

토미오카 기유.

그건 차갑고 푸른 눈, 남자의 이름이었다.

 

지금은 햇빛이 내려쬐지 않아 괜찮은 모양이다만 동생을 태양 아래로 데려가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남자는 조언을 남기고 쏜살같이 사라졌다.

탄지로는 집으로 돌아가 집 앞에 가족들을 묻어주었다.

 

가자.”

 

 

저절로 상처가 회복된 네즈코에게 한 말이었다.

탄지로는 기유라는 남자가 알려준 대로 안개산으로 향했다.

오니로 변해버린 여동생 네즈코의 손을 잡고.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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