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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일기(일부비공개)

27. 우울증 일기 - 5년 동안 노래방을 너무 자주 찾았다

by 스토리대전 2022. 3. 19.

26살 겨울.

아직 내가 우울증이란 걸 전혀 자각하지 못할 때.

23살부터 갑자기 해외축구에 관심을 갖고 어느 날부터 통증이 느껴지는 악몽을 꾸고(무의식적으로 자는 동안 손톱으로 내 몸을 찌르고 있었기에)불면증에 시달렸었지만 우울증이라고는 상상도 못 할 때였다.

스스로 알게 된 건 30살의 겨울 무렵이었으니.

 

혼자 노래방에 자주 갔다.

학창시절 스트레스에 친구들과 함께가는 노래방이 아닌 뭔가에 집중할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매일같이 갔었다.

하루에 1번 가는 날은 낮이나 저녁, 하루에 2번 가는 날은 점심과 저녁에, 하루에 3번 가는 날은 새벽, 낮, 저녁에.

질리지도 않고 갔었다. 정말 많이 간 날은 1달에 10만원 이상을 썼었는데 내가 자주 가던 곳은 1,000원에 6곡을 주던 곳이었다.(이곳은 2년이상 다녔었고 이곳이 안 여는 날이면 지하철 1정거장 거리를 걸어서 코인노래방을 찾았다. 새벽에도.)

 

"백수니까 그렇게 다닐 수 있지." 라고 한다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출근하는 날에도 새벽에 일어나 노래방에 갔다가 7시에 출발한 적도 있다.

점심시간에 식사를 거르고 노래방을 찾아간 적도 여러번 있다.

퇴근 후에는 5일 중 적으면 2일 많으면 4일 정도를 찾았었다.

송년회에서 막내라는 이유로 노래를 불러야 했을 때에도 그곳에서 노래를 부르고 1시에 집에 도착해 또 노래방에 가서 2시가 넘게 노래방에 있다가 집에 들어간 적도 있다. (회식이나 야근이 있던 날은 퇴근 후 집에가면 보통 밤11시가 가장 많았고 새벽 2시 반이 넘었던 날도 있고 다음 날 오전7시에 집에 간 적도 있다.) 

 

지겹게도 불러댔다. 목소리도 조금 변했다. 노래방만 다녀오면 작은 목소리도 커져있었다.

오랜만에 같이 노래방에 간 친구는 내 실력이 확실히 늘었다고 몇 번 말해주었다.

코인 노래방 2곳의 사장님은 물론 알바를 3명이나 돌려 쓰는 곳의 알바 1분과도 안면을 틀 정도로 갔었으니까.

 

목이 아파도 불렀다.

발라드, 락, 랩, R&B 심지어 일본노래도 자주 불렀다.

가요가 아닌 것들도 불렀다. 전혀 듣지 않았던 노래들도 불렀다.

너무 자주, 많이 불렀기에 부르던 것들만 부르면 재미없었다.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사실, 한 번은 친구들과 노래방에 갔을 때 슬픈 노래를 부르니 친구들이 날 쳐다봤는데 내 노래가 우는 사람이 부르는 것처럼 들려서였을 거다.

난 기교보다 감정을 넣어서 부르는 걸 좋아하다보니 그런 오해를 샀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뒤론 노래방에 포효하러 갔다. 방에서 우는 것 대신 포효했었다.

 

노래는 1곡도 안 듣지만 부르는 건 수십곡을 불렀다.

그게 내 치료제였다. 

 

26살의 어느 날을 조금 고백하겠다.

당시 '어릴 적 친구들이 적은데 그마저도 점점 멀어져간다.'는 생각에 쓸쓸했다.

멀어져가는 친구 중에는 자기가 받았던 상처들을 모조리 적어놓은 비밀 블로그에 초대해 주었던 친구도 있었다. (그 친구는 보여줄 수 있는 블로그와 초대한 사람만 볼 수 있는 암울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 친구 블로그가 언젠가 안 보이게 되었는데 아마 날 이웃에서 해제했던 거 같다. 그건 그 친구의 진짜 일기와도 같았기에 지운 것 같진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그 친구, 정확히는 오래된 친구를 잃는 게 무서워서 마음에도 없는 고백을 했다.

그 친구는 어느날부터 남성혐오자가 되어 있었는데 그걸 알고도 고백했다.

이유는 '내가 그 사람을 고쳐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지금 생각하면 개같은 이유를 가지고 고백한 것이다. 누가 나에게 그런 이유로 고백한다면 너무 아플 거 같다.

당시 내가 얼마나 미숙했던 사람인지, 지금도 숨길 수 있으면 숨기고 싶을 정도로 창피하다.

일부만 고백하는 이유가 그 친구의 이해안가는 행동도 있지만 스스로 창피한 게 더 크다.

 

여하튼 그 친구에게 차였고 그 친구는 내게 보러가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차고나서 바로. 아마 기대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우울증은 아프니까.

그 이후부터였다. 혼자 노래방에 그렇게 질리도록 갔던 건.

그 후 몇 달 뒤엔 완전히 연을 끊은, 내 가치관의 차가운 면만 보였던, 앞으로 차단도 풀 일 없는, 스쳐간 친구가 되었지만 노래방은 그 뒤로 5년을 다녔다.

 

하지만 가는 날과 부르는 노래는 점점 줄었고 5년차엔 내가 울부짖고 싶은 날들만 골라 다녔다. 또는 이유없이 너무 허무한 날만.

그러다 코로나와 방역패스로 전혀 갈 수 없게 되었고 지금은 갈 수 있어도 가지 않는다.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 아픈 노래를 들으며 이입하는 게 더 좋다는 걸 알게 되었기에.

 

아마자라시라는 가수의 노래를 계속 검색하다가 알게 된 것이 있는데 그건 그의 노래는 보통 힘든 사람들, 우울증인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것이었다.

그걸 최근에야 알게 된 덕에 이제라도 좋아하는 가수를 함부로 밝히면 안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디까지 철저해져야 제대로 숨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난 지금 우울하지 않다. 그냥 슬픈노래에 취하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도 좋아하는 것들을 숨겨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밝히면 분명 날 꺼림칙한 우울증 환자, 언제라도 제정신이 아니게 될 수 있는 사람, 불안한 사람으로 볼테니까.

 

힘들 때 날 찾아주던 사람들이 좋았었는데 우울증을 한바탕 겪고나니 좋았던 것들의 이면만 보인다.

내 병을 꺼림칙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살다가 힘들어 졌을 때, 혹은 비슷한 병을 앓게 되거나 겪고 있는 소중한 사람이 생겼을 때, 날 찾지 않았으면 좋겠다. 

 

전염병도 아닌데 아프다는 이유로 날 꺼림칙하게 여기는 사람. 여기까진 괜찮다.

그런데 다시 날 찾는다면 눈 앞에서 뛰어내려도 아무렇지 않을 거다.

혹시라도 그런 게 있다면 난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던 것으로 취급하니까.

이건 내가 극도로 화날 때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러갔는데 어찌됐든 이제 노래방을 전처럼 찾진 않을 거 같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를 부를 때 찾고 싶다.

친구들과 회포를 풀고 싶을 때, 추억이 담긴 노래들을 부를 때 찾고 싶다.

(수정) 몇 시간 지나니 갑자기 가고 싶다. 변덕이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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