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빗속의 여자.
비는 끝도 없이 쏟아졌다. 서울은 온통 물에 잠긴 듯했다. 장충동에 있는 낡은 대중목욕탕은 평소처럼 오후 8시를 향해 문을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장 민기철은 서둘러 마무리 청소를 하며 혼자만의 고요 속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그날, 예상치 못한 손님이 찾아왔다.
빨간 우산, 빨간 우의. 입술을 파르르 떨며 문을 두드린 여자는 비에 흠뻑 젖은 채로 다가왔다. 기철은 처음에 그녀를 막을까 고민했지만, 그녀의 처량한 모습에 흔들렸다.
"잠깐이라도 몸을 녹이고 싶어요. 제발 부탁입니다."
기철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문을 열었다. "얼른 씻고 나가세요. 문 닫아야 하니까."
여자는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무겁게 발걸음을 옮겼다. 기철은 그녀가 탕 안으로 사라진 뒤 문을 잠갔다. 시간이 흘러 8시가 넘었다. 기철은 조용히 여탕 문을 두드리며 "이제 나가야 합니다"라고 말했지만, 대답은 없었다.
또다시 문을 두드렸지만, 여전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는 주저하다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순간, 기철은 자신의 심장이 멎는 듯한 공포에 사로잡혔다.
탕 속에선 붉은 물결이 일렁였다. 물은 이미 피로 물들어 있었고, 여자는 두 눈을 크게 뜬 채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살아 있지 않았다. 그녀의 몸은 여러 군데 깊이 베여 있었고, 그녀의 입가엔 기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기철은 서둘러 경찰에 신고했다. 사건은 곧 수사가 시작되었지만, 경찰은 범인을 잡지 못했다. 목욕탕은 완전히 잠긴 공간이었고, 문은 오로지 기철만이 열 수 있었다. 그는 명백한 용의자였지만, 아무런 동기도, 살해 도구도 찾을 수 없었다.
몇 달이 지나면서 목욕탕의 이야기는 서서히 사라져갔고,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 하지만 그날 밤의 장면은 기철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무언가가 잘못되었다고 확신했다. 마치 그 여자가 그의 눈앞에서 미리 죽음을 계획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후, 매년 비가 억수로 내리는 날이면, 기철은 꿈속에서 그녀를 본다. 여전히 빨간 우산을 들고, 두 눈을 크게 뜬 채로 말이다. 그녀는 매번 그에게 속삭인다. "왜 날 돕지 않았나요?"
기철은 이제 지방으로 도망쳤지만, 비가 내리는 날마다 그 여자의 얼굴이 그의 눈앞에 다시 떠오른다. 마치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처럼.
2. 따라오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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