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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무서운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 공포 이야기, 괴담: 1 목욕탕

by 스토리대전 2024. 10. 11.


1. 빗속의 여자.

비는 끝도 없이 쏟아졌다. 서울은 온통 물에 잠긴 듯했다. 장충동에 있는 낡은 대중목욕탕은 평소처럼 오후 8시를 향해 문을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장 민기철은 서둘러 마무리 청소를 하며 혼자만의 고요 속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그날, 예상치 못한 손님이 찾아왔다.

빨간 우산, 빨간 우의. 입술을 파르르 떨며 문을 두드린 여자는 비에 흠뻑 젖은 채로 다가왔다. 기철은 처음에 그녀를 막을까 고민했지만, 그녀의 처량한 모습에 흔들렸다.

"잠깐이라도 몸을 녹이고 싶어요. 제발 부탁입니다."

기철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문을 열었다. "얼른 씻고 나가세요. 문 닫아야 하니까."

여자는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무겁게 발걸음을 옮겼다. 기철은 그녀가 탕 안으로 사라진 뒤 문을 잠갔다. 시간이 흘러 8시가 넘었다. 기철은 조용히 여탕 문을 두드리며 "이제 나가야 합니다"라고 말했지만, 대답은 없었다.

또다시 문을 두드렸지만, 여전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는 주저하다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순간, 기철은 자신의 심장이 멎는 듯한 공포에 사로잡혔다.

탕 속에선 붉은 물결이 일렁였다. 물은 이미 피로 물들어 있었고, 여자는 두 눈을 크게 뜬 채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살아 있지 않았다. 그녀의 몸은 여러 군데 깊이 베여 있었고, 그녀의 입가엔 기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기철은 서둘러 경찰에 신고했다. 사건은 곧 수사가 시작되었지만, 경찰은 범인을 잡지 못했다. 목욕탕은 완전히 잠긴 공간이었고, 문은 오로지 기철만이 열 수 있었다. 그는 명백한 용의자였지만, 아무런 동기도, 살해 도구도 찾을 수 없었다.

몇 달이 지나면서 목욕탕의 이야기는 서서히 사라져갔고,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 하지만 그날 밤의 장면은 기철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무언가가 잘못되었다고 확신했다. 마치 그 여자가 그의 눈앞에서 미리 죽음을 계획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후, 매년 비가 억수로 내리는 날이면, 기철은 꿈속에서 그녀를 본다. 여전히 빨간 우산을 들고, 두 눈을 크게 뜬 채로 말이다. 그녀는 매번 그에게 속삭인다. "왜 날 돕지 않았나요?"

기철은 이제 지방으로 도망쳤지만, 비가 내리는 날마다 그 여자의 얼굴이 그의 눈앞에 다시 떠오른다. 마치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처럼.

 

 

 

2. 따라오는 그림자.

 

중학생 태민은 방학을 맞아 친구 집에서 늦게까지 놀다가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평소와 다르게 길이 어둡고 조용해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밤이 깊어가자 골목길에 있는 불빛조차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태민은 속도를 높여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그때 반대편에서 두 남자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두 사람은 대화에 몰두한 채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웃고 있었다. 그러나 태민은 그 뒤에 한 사람이 더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남자는 두 사람의 등에 업혀 있었다. 그의 모습이 태민의 눈에 들어오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업힌 남자의 얼굴은 창백했고, 머리에는 검정색 비니가 덮여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은 태민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무표정했다. 태민은 마음속에 묘한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 남자의 팔은 축 늘어져 있어, 마치 그 남자를 받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이건 분명 잘못 보았겠지?" 태민은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걸어가면서도 그 남자의 하체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 ‘그의 하체가 없으면... 그건 도대체 뭐지?’ 태민은 시선이 강하게 이끌리면서도 모르게 다가갔다.

그와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태민은 더욱 더 확신하게 되었다. 업힌 남자의 몸이 형체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는 순간적으로 얼어붙었고, 입이 떨리며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공포에 질린 그는 다가서는 두 남자와 업힌 남자를 지나치고, 돌아서려 했을 때, 그 남자의 눈이 그를 따라왔다.

태민은 사라져버린 것 같은 발걸음으로 집으로 도망쳤다. 집에 들어가서도 그의 가슴은 여전히 쿵쿵 뛰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음 날, 동네에서 큰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목욕탕의 보일러실이 폭발해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뉴스에서도 대서특필되었다. 태민은 멍한 상태로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친구들이 떠들썩하게 이야기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심장은 점점 더 불안해졌다.

학교에 가자, 그 사건에 대한 소문이 퍼져 있었다. 친구가 조심스레 태민에게 말했다. "그 목욕탕 사고로 한 학생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대."

태민은 잠시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 순간, 친구가 태민에게 손가락으로 한 학생을 가리켰다. "쟤야, 쟤 어머니가 그 사고로..."

태민이 그 아이를 바라보는 순간, 그의 심장은 얼음처럼 식어버렸다. 그 아이는 바로 하체 없는 남자를 업고 있던 남자였다. 그 비정상적인 모습이 그대로 그의 기억 속에 재현되었다.

"이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태민은 생각했다. 마치 그 아이의 몸 안에 업힌 남자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날 밤, 태민은 공포에 휩싸여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림자 같은 그 남자의 존재가 그의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태민은 알게 되었다. 그 남자는 죽은 아이의 어머니와 연결되어 있었고, 이제 태민은 그 여자의 복수를 받아야 하는 증인으로 남겨진 것이다. 그날 이후로, 태민은 꿈속에서 그 남자를 만났고, 매번 같은 질문이 반복되었다. "왜 나를 도와주지 않았어?"

태민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공포는 그를 감싸고, 점점 더 깊은 어둠 속으로 그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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