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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일기(일부비공개)

2. 우울증 일기 - 내가 버린 시간들

by 스토리대전 2021. 2. 9.

새벽 5시. 
밤잠을 못 이룬 나는 허기를 느껴 현관을 나섰다.
10월의 밤이지만 낮동안 햇볕이 강하게 내렸던 방엔 열기가 아직도 머물러있다.
다른 식구들이 깨지 않게 조용히 나와 바로 향한곳은 24시간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사실, 내가 허기를 느낀 건 두어시간 전 부터였다.
하지만 3시에 가면 아무리 24시간 운영하는 식당이라도 반가워하지 않는다.
그 시간의 식당은 비공식적으로 쉬는 시간이다.
그걸 알고부터는 그 시간은 피했다.

이 시간엔 의외로 많은 손님이 있고 또 오기도 한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손님은 꽤 숙련되보이는 일용직 노동자들이었다.
누군가에겐 아침으로도 부담스러울만한 식사를 새벽부터 입에 넣었다.

텔레비젼에선 여당에 관한 뉴스가 흘러나온다.
그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식사를 하면서 뉴스를 본다.
얼굴엔 무언가 할 말이 있어보이지만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식사만 한다.
그들의 옷은 보통 어두운 계열로 비나 먼지가 잘 흡수되지 않는 재질로 보였다.

내가 돈가스를 먹고 있을 때 또 다른 유형의 손님들이 들어왔다.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손님 둘.
젊지 않은 여성 하나. 
문 앞에서 김밥을 달라는 남자.

3시에 이곳에 오면 보통 나 외엔 손님이 없었다.
가게 안에서 밖을 보면 소리없는 거리가 깊고 깊은 밤이라고 알려줄 뿐이었다.

누군가에게 아직 깊은 밤일 수 있는 5시.
하지만 이곳에 졸려보이는 사람은 없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엔 천천히 걸었다.
그렇게 걸으면 산책하는 기분이었고 새벽에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과
차들이 날 지나쳤다.

시간이 달랐다.
시계가 알려주는 시간은 그들과 같지만 내 시간은 다르게 느껴졌다.
이른 새벽, 그들은 하루를 막 시작하고 있었고
난 하루의 끝을 흘려보내고있었다.

집으로 돌아간 뒤 난 원래 자고있던 것 처럼 이불을 덮었다.
그렇게 30분쯤 지나니 이 집에서도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있었다.

같은 공간, 같은 시에 있어도 
대화를 하고 있어도 외로움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오늘은 괜찮다.
외로움의 다른 면을 배웠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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